달라이라마의 용서와 공과 자비
달라이 라마에게는 세 가지 개념이 떠나지 않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데, 용서와 공과 자비입니다. 그 중에 그에 대해서 열광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가장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개념이 용서입니다.
그는 행복해지는 것이야말로 모든 삶의 목적인데, 어떻게 해야 행복해지는가? 분노와 미움, 혹은 적대적 감정을 가지고 승리를 거둔다고 하더라도 결코 삶의 승리자가 되는 것이 아니며 행복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용서해야 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우리의 내적인 힘을 키워주고 그들이 결국 행복으로의 안내자로 인식하기까지 용서로 포용하는 거기에 진정한 행복이 있다고 말합니다.
용서의 마음이란 타인의 나에 대한 행위에 상관하지 않고, 내가 타인의 고통을 볼 줄 아는 마음, 책임지는 마음, 뭔가 해주고 싶은 마음이라고, 그리고 그것이 행복을 결정짓는 이유라고 말합니다.
달라이 라마가 말하는 공이라는 개념은 그냥 설명될 수 있거나 제가 이해하는 정도를 넘어서는 깊이가 있겠지만,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볼 수 있거나 만질 수 있는 모든 사물들은 일반적인 차원의 실체와 궁극적 차원의 실체로 나누어진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머그 컵에 담긴 물을 보고 물이라고 하는 것, 안경을 벗고 보든지 끼고 보든지, 내가 보든지 남이 보든지 물을 물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을 일반적인 실체가 나타내는 진리라고 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간혹 물을 노란 쥬스로 볼 수도 있는데, 마치 색맹인 사람이 색상을 잘못 보는 것과 같은 감각 기관이나 감정의 기복이 나타낼 수 있는 오류를 범하지 않도록 이성적인 탐구를 해나가야 한다고 하는 것이 달라이 라마의 생각입니다.
궁극적인 실체라고 하는 것은, 머그 컵은 본래 머그 컵이 아니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물과 진흙이 개어져서 컵의 형태로 만들어 불에 구워진 것입니다.
그것은 그렇게 만드는 사람이 있기도 하거니와 진흙과 물이 합쳐지고 그것은 또한 수많은 원자들과 분자들이 무수히 다른 방식으로 작용한 결과로 존재를 갖게 되었다는 그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 머그 컵을 만든 사람 역시도 그 부모가 서로 만나지 못했으면 존재할 수 없고, 그래서 머그 잔은 그것을 만든 사람의 부모까지도 서로 상관이 없을 수가 없다는, 결국 모든 존재가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무엇이나 " 발생에 있어서 다른 것에 의존하고 있다 " 달라이 라마는 거기서 "본래의 존재가 본질적으로 비어있다"고 하는 공의 개념을 말하고 있습니다.
달라이 라마는 사람들이 이런 실체 사이의 의존을 생각하지 않고 개별적이거나 독립적인 존재임을 조금도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 까닭에 이기적인 행동인 나온다고 말합니다.
그는 늘 사람과 사람사이, 사람과 사물 사이에 상호 연결을 생각했기에, 나의 이익이나 너의 이익이 분리되지 않았고, 타인을 위한 헌신이 곧 행복을 위한 자기의 한 차원 높은 이익이라고 굳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모든 존재가 상호 의존적인 것을 알고, 타인을 위한 고통을 분담하게 되는 게 자비이며, 그 자비는 적들을 포함해서 베풀어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자기만을 생각하는 사람은 마음의 공간을 작게 가지게 되기 때문에, 작은 문제도 크게 느끼지만, 남의 행복을 생각하는 마음은 자연히 그 마음이 커져서 자신의 큰 문제도 결코 크게 느껴지지 않는 게 자비의 효과라고 하는 것입니다.